“1919년 대한민국 건립” 외친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니 [왜냐면]

입력
수정2024.04.22. 오후 7:41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1948년 8월15일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언하는 이승만 대통령. 그는 이날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다. 출처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①

이준식 | 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승만 하면 많은 사람이 독재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띄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바 있다.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가 여기에 가세했다. 급기야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로구 열린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과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다. 더 이상 어떤 평가가 필요한가? 설사 작은 공이 있더라도 그 이상으로 과가 크다. 이승만에게 공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일부에서 강변하는 ‘건국의 아버지’가 결코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1948년 5·10 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은 초대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이승만은 5월31일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대한독립민주정부의 재건설”을 역설했다. 대한독립민주정부는 다른 말로 하면 민국 곧 대한민국이다. 다시 이승만의 말을 인용하면 “29년만의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1919년)에서 기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을 만들 때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지만 1919년에 이미 출범한 대한민국을 계승해 나라 이름으로 계속 쓰자는 결론이 났다. 그 결과 제헌헌법 전문에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구절이 들어갔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미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 제헌헌법에 따른 정부의 출범은 대한민국의 재건이라는 뜻이었다.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축하식의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다. 이어 9월1일 나온 첫 대한민국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이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의 정부 수립을 통해 건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승만 정부 스스로가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후 몇 차례 개헌을 거치면서 헌법 전문은 바뀌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이승만을 띄우려는 사람들은 1948년 8월15일 정부의 출범이 곧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강변한다.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고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고 주장한 이승만의 유일한 공마저도 부정하는 것이다.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건국절’ 제정을 밀어붙여 왔다. 그런데 정부 수립일이 곧 국가 건립일이라고 보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자문화권에서 ‘건국’이라는 이름의 국가 기념일을 가진 나라는 일본뿐이다. 단 일본은 신화에 나오는 초대 천황이 즉위한 날을 1873년에 기원절로 정했다가 1966년부터는 ‘건국 기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일본조차 ‘건국절’을 주장하는 무리처럼 근대 정부가 출범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개천절에 해당하는 날을 건국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을 선언한 날을 국경절로, 타이완은 1911년 무창기의가 일어난 날을 쌍십절로 각각 기념한다. 북한은 1948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포한 날을 인민정권 창건일로, 베트남은 1945년 호치민이 독립을 선언한 날을 국경일로 각각 기념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기념하는 날은 우리의 3·1절이나 광복절에 해당하는 독립 기념일이다. 특히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에서는 한결같이 독립 기념일을 자신의 뿌리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도 독립 기념일을 기념한다. 7월4일을 미국 건국일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은 없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무리하게 ‘건국절’을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세탁하기 위해서이다. ‘건국절’ 제정을 통해 독립운동가를 대한민국에서 떼어낸 다음에 그 자리에 친일파와 그 후예인 독재정권 부역 세력을 집어넣어 마치 친일과 독재가 대한민국의 정통인 것처럼 만들려는 검은 속내가 ‘1948년 건국’ 주장에 담겨 있다. 그래서 ‘건국절’ 이야기를 자꾸 꺼내고 그 일환으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호출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